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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내 일상을 따라다니며 괴롭힌 지긋지긋한 놈이 하나 있다. 바로 만성 비염과 목에 늘 가득 고여 있는 가래다. 솔직히 안 해본 게 없다. 엄마 손에 이끌려 동네 병원은 문턱이 닳도록 다녔고, 한의원부터 시작해서 한방병원, 축농증 수술, 그리고 전국의 용하다는 의원까지 찾아다니며 ‘비염 유목민’ 생활을 한 지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다. 이 눈물겨운 탈출기 속에서 내가 겪은 시행착오와 깨달음을 솔직하게 풀어보려 한다. 앞으로 풀어볼 이야기는 단순 나의 경험이지 모두에게 맞는 해답은 아니라는 것은 명심해 두길 바란다.

고3 시절, 뇌에 산소가 부족해 멍해지던 날들
가장 처음 생생하게 기억나는 건 고등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넘어가던 중요한 시기였다. 남들은 공부하느라 엉덩이 싸움을 한다는데, 나는 코가 꽉 막혀서 도무지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이게 비염 때문인지, 아니면 축농증 때문인지 코 안이 꽉 막히니까 정말 뇌에 산소가 공급이 덜 가는 기분이었다. 머리가 하루 종일 멍하고 찌르르 아프니 책을 봐도 글자가 둥둥 떠다녔다. 공부는 해야겠는데 몸이 안 따라주니 미칠 노릇이었다. 참다못해 출근해 있는 엄마한테 SOS를 쳤고, 그렇게 첫 조퇴를 해보면서 내 본격적인 비염 투쟁기가 시작됐다.
"코로 숨을 쉬지 못하면 뇌로 가는 산소가 줄어들어 만성 피로와 집중력 저하를 유발합니다. 이는 일반 학생뿐만 아니라 특히 수험생에게 치명적인 학업 방해 요소가 됩니다."
아빠 지인 한의원, 그리고 살찐 비버가 된 사연
엄마가 가장 먼저 나를 데려간 곳은 아빠 지인분이 운영하신다는 한의원이었다. 검진을 이것저것 받더니 한약을 한가득 지어주셨다. 효과가 있기를 바라며 꾸준히 챙겨 먹었는데, 신기하게 코가 뚫리기 전에 다른 곳에 반응이 왔다. 무슨 스테로이드 성분이라도 들어있었던 건지 입맛이 미친 듯이 돌기 시작했다. 그때는 진짜 맨밥에 김치만 얹어 먹어도 입안에서 김치가 축구공처럼 굴러다니면서 축구 대회를 여는 것 처럼 상상력을 자극하듯 감칠맛이 폭발했다. 아직도 그 김치 맛이 생생하게 기억나서 피식 웃음이 난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 맛이 안나서 조금 아쉽긴했다. 먹는 족족 살로 가다 보니 거울을 보면 웬 살찐 비버 한 마리가 서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영문도 모르게 온 얼굴을 여드름이 뒤덮기 시작했다. 공부할 때라 외모 스트레스는 덜 받았지만, 매일 밤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 엄마가 여드름을 짜주던 기억이 난다. 매번 짜는 고통에 휩싸여 있지만서도 엄마의 무릎 품이 다시금 기억이 나고 나의 어릴적 추억 중 하나가 되었다. 어찌됐든 아쉽게도 비염에는 별 효과가 없었던거 같고, 결국 나의 입맛만 미친듯이 돌게한 사건이 되어 버렸다. 이후 엄마는 또 다른 곳을 수소문 해주고 알아봐주었다.
학교 조퇴하고 다니던 한방병원의 따뜻한 추억
한약이 통하지 않자 이번에는 조금 더 큰 한방병원 같은 곳으로 향했다. 거기서는 주로 뜸을 뜨거나 적외선 열 치료 같은 걸 해줬다. 주기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해서 무려 '학교 조퇴'를 공식적으로 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솔직히 말하면, 치료 목적으로 간 거였지만 남들보다 학교를 일찍 마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사춘기 고등학생에게는 엄청난 쾌감이었다. 그때 당시의 선명한 기억이란 다들 나에게 정말 부러워하는 눈빛을 보였다. 나는 조퇴를 할때는 코 때문에 머리가 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갔지만 교문 밖을 나서자마자 룰루랄라 행복한 발걸음으로 버스를 타러 갔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한방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자주 가는 나를 아는 간호사분께서 바로 안내를 해주셨다. 따뜻한 적외선 불빛을 코와 얼굴에 쬐고 있으면 온몸이 노곤노곤해졌는데, 낫는지는 잘모르겠지만 그거는 그냥 둘째치고 그냥 행복하기만 했다. 다들 알지 않은가. 날이 정말 따사롭고 포근할 때 잔디나 자연을 보면서 돗자리 펴고 누워 눈을 살포시 감고 있으면 그 따스함이 느껴지는 그 분위기. 그래서 여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행복했던 기억과 별개로 내 코 상태는 여전히 꽉 막힌 직진 금지 표지판 같았다.
내 인생 첫 해방감, 축농증 수술의 기억
결국 한방 치료로도 답을 찾지 못하고 엄마가 잘 아는 곳의 이비인후과에서 축농증 수술을 받게 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인생은 이 수술 전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술을 마치고 마취에서 깨어나 지혈 거즈를 뽑아냈을 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숨을 쉰다는 게 이렇게 편한 거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정말 코 안에 아무것도 없이 뻥 뚫린, 우주 공간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왼쪽 코와 오른쪽 코 사이에 공기가 통한다는 느낌을 처음 받아보고 정말 이게 평범한 세계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의사 선생님이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주는데, 코 안쪽에 염증이 너무 가득 차 있어서 엄청나게 긁어냈다고 하셨다. 그 사진을 보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어떻게 저렇게 꽉 막힌채 내가 살아온거지 싶더라. 한동안은 정말 세상 살맛 나게 편하게 지냈던 것 같다.

독서실 눈총의 주범, 멈추지 않는 '킁킁' 습관
하지만 행복도 잠시, 비염의 여파인지 몰라도 내 목에는 항상 가래가 낀 느낌이 떠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가래를 삼키거나 뱉어내려고 목에서 '킁킁' 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게 매일 반복되다 보니 어느 순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완벽한 습관으로 자리 잡아 버렸다. 조용한 독서실 같은 곳에 가면 이 킁킁거림이 아주 대포 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물론 처음에는 습관으로 내다 보니 내가 그런 소리를 냈는지도 몰랐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눈총을 한 두번 받다보니 그 소리의 원인이 나였구나 라고 깨달았다. 민망해서 눈치가 보이니까 킁킁거릴 것 같다 싶으면 얼른 밖으로 뛰어나가 목을 가다듬고 다시 들어오곤 했다. 그 과정이 얼마나 번거롭고 스트레스였는지 비염 환자들은 다 알 거다. 그렇게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어영부영 성인이 되었고, 이 지독한 만성 질환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자주묻는 질문
비염으로 머리가 멍할 땐 어떡하죠?
코막힘으로 산소가 부족해지면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이럴 때는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거나 따뜻한 물을 마셔 코 내부 점막의 붓기를 일시적으로 가라앉히는 것이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축농증 수술을 하면 비염이 완치되나요?
축농증 수술은 고여 있는 염증과 농을 제거하여 숨길을 열어주는 치료입니다. 구조적인 문제는 해결되지만, 알레르기성 체질이나 면역력에 따른 비염 증상은 추후 관리에 따라 재발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