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선생님도 그랬고, 비염에 좋다는 민간요법 책에서도 입을 모아 말했다. 비염은 코안에 차가운 기운과 콧물이 가득 찬 질환이기 때문에, 체온을 떨어뜨리는 찬 음료는 쥐약이고 무조건 생강차 같은 따뜻한 음료를 마셔야 한다고 말이다. 나 역시 그 말을 적극 수용해서 으슬으슬한 겨울철에는 나름대로 '얼죽아'를 참아가며 따뜻한 물을 챙겨 마신다. 하지만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여름이 찾아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여름철 아이스 아메리카노(아아)의 치명적인 유혹 앞에 무릎 꿇는 비염 환자의 하루는 언제나 뜨겁고도 축축하다.여름에는 누가 뭐래도 '아아'가 진리잖아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도 등줄기에 땀이 주륵 흐르는 한여름 낮,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내 머릿속은 격렬한 수 싸움이 시작된다. '아냐, 오늘도 찬 ..
만성 비염 환자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양방 이비인후과에서 뿌리는 스프레이나 항히스타민제 약으로 버티다 안 되면, 결국 마지막 종착지 중 하나로 한방 치료를 고려한다는 점이다. 나 역시 어릴 때부터 코막힘과 목 가래가 너무 심해 엄마 손을 잡고 유명하다는 한의원을 찾았었다. 체질을 바꾸면 비염이 뿌리 뽑힌다는 말에 거금을 들여 한약을 지어 먹었는데, 코가 뚫리기도 전에 내 몸은 엉뚱한 부작용(?)들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바로 통제 불가능한 식욕 폭발과 얼굴을 뒤덮은 여드름이었다.코 안 안 가라앉고 위장 구멍이 열리다한약을 복용하고 정확히 일주일이 지난 시점부터, 내 뇌는 오직 '먹는 것'에만 지배당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비염 때문에 코는 여전히 맹맹하고 냄새도 잘 못 맡는 상태였는데, 이상하게 미각..
학교 다니던 시절, 학생 모두가 가장 짜릿한 단어를 하나 꼽으라면 단연 '조퇴'가 아닐까 싶다. 남들은 칙칙한 교실에 갇혀 7교시 수업을 듣고 야간 자율학습(일명 야자)까지 하느라 갇혀 있을 때, 가방을 메고 당당하게 남들은 학교에 있지만 혼자 교문을 나서는 기분은 겪어본 사람만 안다. 내 학창 시절의 조퇴 명분은 언제나 '비염과 축농증 치료'였다. 한약으로도 별소용 없자 엄마는 나를 데리고 뜸과 적외선 열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한방병원에 등록해주셨고, 나는 그 덕에 주기적으로 합법적 조퇴를 즐기는 특권을 누리게 됐다.교실을 탈출하던 사춘기 소년의 남다른 해방감당시 나는 코가 늘 막혀 있어서 머리가 멍하고 집중이 안 되는 상태였다. 치료를 목적으로 가는 병원이었지만, 꽉 막힌 교실을 벗어나 버스를 타고 ..
코막힘을 고치러 갔다가 엉뚱하게 인생 최대 몸무게를 찍고 온 이야기, 그리고 거울 속에 웬 털만 없는 살찐 비버 한 마리가 서 있게 된 사연을 털어놓으려 한다. 비염 환자라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약 한 번쯤은 다들 처방받아 먹어봤을 터다. 나 역시 코 안의 염증을 가라앉혀 준다는 달콤한 말에 속아(?) 한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기 시작했는데, 내 몸은 코 대신 엉뚱한 곳부터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바로 위장이었다.미친 듯이 폭발한 식욕, 김치 한 조각의 마법한약을 먹고 일주일쯤 지났을까, 내 몸에 기이한 변화가 찾아왔다. 보통의 사람들은 밥맛이 없을 때 보약을 먹는다는데, 나는 비염 약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모든 음식의 냄새가 3D로 입체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주방에서 엄마가 김치통만 ..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내 학창 시절, 특히 고등학교 2학년과 3학년 시절은 코막힘과의 잔인한 전쟁이었다. 남들은 수능 준비하느라, 모의고사 성적 올리느라 엉덩이 싸움을 한다고 정신이 없었지만, 나는 시도 때도 없이 막히는 코 때문에 머리를 쥐어뜯느라 정신이 없었다. 독서실에 앉아 책을 펼치면 코에 스톱워치가 있는지 딱 10분 만 되면 코가 꽉 막히면서 머리가 띵해지기 시작했다. 비염 환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그 지독한 '멍함'의 정체와 공부 집중력을 다 갉아먹던 그 시절의 억울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뇌에 산소가 부족하다는 게 어떤 느낌이냐면코가 꽉 막혀서 숨이 안 쉬어지면 단순히 답답한 걸로 끝나는 게 아니다. 진짜 뇌에 산소가 공급이 덜 가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머리 전체가 안개 낀 것처..
어릴 때부터 내 일상을 따라다니며 괴롭힌 지긋지긋한 놈이 하나 있다. 바로 만성 비염과 목에 늘 가득 고여 있는 가래다. 솔직히 안 해본 게 없다. 엄마 손에 이끌려 동네 병원은 문턱이 닳도록 다녔고, 한의원부터 시작해서 한방병원, 축농증 수술, 그리고 전국의 용하다는 의원까지 찾아다니며 ‘비염 유목민’ 생활을 한 지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다. 이 눈물겨운 탈출기 속에서 내가 겪은 시행착오와 깨달음을 솔직하게 풀어보려 한다. 앞으로 풀어볼 이야기는 단순 나의 경험이지 모두에게 맞는 해답은 아니라는 것은 명심해 두길 바란다.고3 시절, 뇌에 산소가 부족해 멍해지던 날들가장 처음 생생하게 기억나는 건 고등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넘어가던 중요한 시기였다. 남들은 공부하느라 엉덩이 싸움을 한다는데, 나는 ..